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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스택계발자/서비스 기획

[해커톤] 서비스를 처음 만들어 보는 사람들이 모이면 생기는 일

오랜만에 학교에 들렀다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붙어있는 해커톤(hackathon) 모집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2박 3일동안 서비스를 만들어 보는 대회' 라길래 무작정 신청했다. 모집 분야에 서비스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가 구분돼 있는걸 보고 '디자이너, 개발자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나름 서류전형을 거쳐 합격자를 발표 한다길래 꽤 공들여 지원서를 작성했다.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가 됐다. 운이 좋게 합격 문자를 받았다. 2박3일 동안 모여서 하루종일 서비스를 만들 예정이기 때문에 시간을 미리 확보해 두라는 안내 메일도 받았다. 밤샘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유의사항도 있었다.

 

해커톤에 합격한 인원은 50명 정도였다. 해결하고 싶은 문제 주제가 유사한 사람들 끼리 묶고, 각 포지션별로 한명에서 두명씩 이뤄진 총 15개 팀이 만들어졌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면서 각자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공유했다. 모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반려동물'이라는 카테고리는 같았다. 그 중에서 '동물병원 진료비 공유 서비스'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반려동물을 기르면 동물 병원을 한번은 꼭 가게 되는데, 그때마다 진료비가 다른 경험은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주제를 정한 다음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서 멀뚱멀뚱했다. 참여자 대부분이 서비스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학부생이거나 갓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나도 딱 그수준이었다. 신사업 경진대회에서 사업계획서로 상 받아 본 경험과 서비스 기획자 6개월 직장생활이 전부였다. 각자 자기분야 결과물을 혼자 만들어 보거나, 시키는 일만 해봤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처음부터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참여만 하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는 막연한 상태로 서로를 바라봤다.

 

누군가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했다. 침묵의 눈치 게임을 하다가 결국 내가 팀장 역할을 맡아 서비스 개발을 이끌게 됐다. 팀 멤버 중 제일 나이가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회사에서 했던 대로 일단 화면 기획을 하겠다고 했다. 화면 기획이 끝날 동안 디자이너에게는 디자인 레퍼런스를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고, 개발자에게는 기본 개발 환경세팅을 해달라고 했다. 

 

 

당시 내가 하던 화면 기획은 PPT에다가 앱/웹화면에 들어갈 버튼 위치 위주로 구성하고 어떤걸 누르면 어떤 화면으로 이동한다는 와이어프레임을 수십수백장 다 그려야 끝나는 식이었다. 의식 흐름대로 메인화면을 그리고 다음에는 필요할 것 같은,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버튼 들을 채워 넣었다. 여백이 있으면 괜히 설명 내용까지 채워 넣었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 완벽한 화면 기획 한 페이지를 마치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제한된 2박 3일 중에 꼬박 하루를 내(서비스 기획자) 일이 끝날 때까지 다른 두명은 기다리기만 했다. 세 사람이 모인 우리 팀 하루 72시간 (24시간*3명) 중 1/3만 사용되고 있는 꼴이었다. 그렇게 둘째날이 됐다.

 

하루를 꼬박 써서 만든 수십페이지 짜리 PPT파일을 디자이너에게 넘겼다. 디자이너는 화면을 디자인 툴로 보기 좋아 보이게 찍어내기 시작했다. 개발자는 디자인이 다될때까지 무얼하면 좋을지 내게 물어봤다. 기획서를 공유해줄테니 그걸 토대로 미리 기능을 하나씩 만들어 달라고 했다. 로그인 화면과 회원가입이 있으니까 회원가입 부터 개발해달라고 했다.

 

 

한창 디자인 작업을 열심히 하던 디자이너가 숨만 쉬면서 화면을 그려도 제한된 마감기한까지 다 못만들 것 같다고 했다. 생각보다 페이지가 너무 많고 그려야할 화면이 복잡하다는 이유였다. 회원가입 작업을 한창 하던 개발자도 기한이 끝날때까지 회원가입 기능 밖에 완성하지 못할것 같다고 했다. 기획서에 있는 화면들 기준으로 봤을 때 개발해야 할 기능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결국, 우리 팀 최종 결과물은 회원가입 화면과 기능, 그리고 서비스 메인화면을 포함한 일부 화면 디자인이 전부였다.
(서비스 기획 PPT파일도...) 

 

심사위원들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제기 때문에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듣기 좋은 말과 우리팀에게 해커톤이 끝나더라도 서비스를 끝까지 완성 해보라고 피드백을 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포기 안하고 끝까지 완성 해보는 경험 자체가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 만난 팀 멤버들은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꼬박 1년이 걸려 결국 서비스를 만들었다.

 

 

Dotor닷터 - 동물병원 진료정보 공유 플랫폼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겪는 불편사항, 문제의 중심에 동물병원이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를 기획했습니다.

www.slideshare.net

 

 

 


2017년이긴 하지만, 해커톤에는 정말 맞지 않는 서비스 개발 방식이었다.

해커톤이 아니더라도 지양해야 할 방식이라는 생각이 정리하는 내내 들었다.

 

 

모여서 아이디어를 하나씩 얘기하고 투표하듯 아이디어 하나를 정한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오너십을 갖는다.

오너십을 가진 사람이 각자 해야 할 일을 할당한다.

가장 먼저 서비스 기획자가 혼자서 화면을 기획 한다.

그동안 디자이너는 레퍼런스를 찾고, 개발자는 기본적인 개발 환경을 세팅한다.

 

수십 수백페이지 짜리 기획서를 디자이너에게 전달한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시작한다.

디자인 결과물을 개발자에게 전달한다.

개발자는 개발을 시작한다.

 

예상 못했던 기획 문제가 발견 된다.

 

기획을 수정하기 시작하고, 디자이너는 작업 했던걸 갈아 엎기 시작한다.

이미 몇달이 지났다.

개발자는 개발 일정 압박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이디어를 냈던 사람도 덩달아 괴로워진다...